에스티로더 일본 진출 40주년
에스티로더 일본 진출 40주년
  • 장업신문 jangup@jangup.com
  • 승인 2006.08.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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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체널 개척자 역할 … 업계발전 큰 기여
40년전까지만 해도 일본백화점 시장은 화장품을 판매해서 이윤을 올릴 곳이 못되며 다만 상품을 진열해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거나 고객 인지도를 확산시키는 전시대 쯤으로 여겨졌다.



● 백화점 판로의 육성 공로자

이같은 시기에 과감히 일본 백화점 판로 개척에 뛰어든 기업이 미국계 에스티로더였다. 1967년 3월에 에스티로더 일본 지사가 설립됐다.

다음해 1968년도 가을에는 일본 유명 백화점들인 도쿄 니혼바시의 ‘다까시야마’, 도쿄 신쥬쿠의 ‘이세탄’, 오사카의 ‘다임마루’등 3점서 당당히 화장품 코너를 오픈하고 판매에 나섰다.

이어서 1970년도에는 남성 종합 화장품 ‘아라미스’, 1978년도에는 전제품 무향료 알레르기 테스트품인 종합 화장품 ‘크리니크’의 대형 브랜드를 투입시켰고, 속속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해 나갔다.

현재는 에스티로더·아라미스·크리니크·오리진스·바비브라운·맥·드라메르 등 9개 브랜드를 거느린 태세로 확충됐다.

이런 제품의 태반이 백화점이라는 한정된 판로에서 유통되며 그룹 전체로서도 항상 백화점 채널의 제 1인자로 자리 매김되는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에스티로더 그룹은 적어도 일본 백화점가에서 화장품 카테고리 유통망을 개척·확립한 선구자이고 그 공로는 대서 특필될 만하다는 것이 현지 화장품업계의 평가다.

이 그룹의 핵심 브랜드인 ‘에스티로더’와 ‘크리니크’등이 최근 몇년간 침체가 계속됐지만 마치 40주년을 의식한 듯이 두가지 브랜드가 다시금 모두 매출 호조로 돌아서면서 관록과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다음에 에스티로더 그룹의 일본 화장품 시장 진출 40주년의 궤적을 살펴보고 각 브랜드의 현황과 전망을 브랜드 톱 운영자들로부터 들어본다.



● 상륙시 초고가품 매출로 부상

일본 언론 보도에서는 ‘날개돋힌듯이 팔려·최고급 화장품·6만8천엔짜리 크림’이라는 제목이 사용됐다. 불과 1~2년전 이와 비슷한 제목을 본 기억이 새롭지만 실상 여기에 인용한 신문 제목은 실로 40년전 에스로더가 일본 시장에 상륙했을때 세상을 놀라게 했던 바로 그것이다.

1968년 당시 화장품 값이 6만8천엔이라고 하면 당시의 대졸 신입사원 월급을 훨씬 능가하는 액수였다.

당시 이런 상품 매출을 기획했던 에스티로더의 일본 지사장 故 존 C 영 씨는 “일본의 화장품 시장은 이 정도의 초고급품을 능히 수용할 만큼 성장했다”고 진단하면서 매출에 자신 만만했다는 뒷 이야기가 전해진다. 故 존 C 영 지사장의 진단대로 6만8천엔짜리 크림이 팔리고, 또 팔려서 대박 제품으로 떠올랐고 순식간에 세계적인 고급 브랜드 에스티로더의 이미지와 존재가 일본 화장품 소비자들 사이에 침투했다.

현재의 야마구치 부사장은 “에스티로더가 백화점을 한정적인 유통 경로로 압축했고 화장품 시장에 일대 충격을 주는 초고가 제품 데뷔를 한 것이 모두 놀라운 전략이였다고 보지만 나는 에스티로더가 일본에서 성공한 이유를 세가지라고 생각한다”면서 다음 3개항을 꼽았다.

△ 일본의 상거래 관습을 존중해 평가한 것. 백화점 채널을 개척해 백화점 전매품으로 원칙을 정함으로써 백화점 측과 확고한 파트너십 관계를 구축한 것 △ 미디어들과의 관계를 훌륭히 다루어 온 것. 일본 특유의 수요에 대응하면서 미디어와 메이커 간에 상호 의사 소통을 원활히 하고 상부상조 관계를 조성한 것 △ B2B, 그리고 B2C면에서 상호 관계를 구축한 것. 특히 B2C 관계에 있어서는 고객 수요의 다양화에 대응해서 그룹산하에 브랜드들을 수시로 도입함으로써 다채로운 수요를 충족한 것이다.

야마구치 부사장은 “이 세가지 요소를 잘 융합시켜 일본 풍토에 맞는 비즈니스를 전개했고 그 결과 일본 진출 40년 역사상 매출이 단 한번도 전년도를 밑돈 일이 없는 확실한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기업 성장의 모습은 보기드문 케이스라고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특히 그가 “일본 시장 특유의 수요가 강했던 화이트닝 화장품의 조기 개발을 당시의 본사 CEO겸 오너였던 레오나드 로더 회장에게 제안했을때 톱다운 형식으로 즉결 처리됐었다”고 회고한다. 그만큼 뉴욕 본사 측이 일본 시장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해었다는 지적이다.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비자 수준이 높아졌고 회사 측은 다수의 유력 브랜드를 지닌 글로벌 브랜드의 장점을 살려 잇따라 유력 브랜드를 일본 시장에 투입하는 기민성을 발휘했다.

1995년에는 식물요법을 도입한 자연화장품 ‘오리진스’ 출시, 1998년 2월에는 톱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창설한 ‘바비브라운’ 도입, 이어서 같은해 4월에는 프랑크 토스칸과 故 프랑크 안제로 두명의 손으로 시작된 메이크업 아티스트용 브랜드‘맥’이 선보였다.

2000년 7월에는 헐리우드의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쟈니느 로베르가 창설한 ‘스틸라’가 도입됐고 같은해 8월에는 미국항공우주국 과학자 맥스 휴버 박사가 개발한 ‘드라메르’를 판매 개시하는 등 독특한 개성의 브랜드들이 시의적절하게 도입됐다.

현재의 에스티로더주식회사의 에스 마크 루미스 사장은 “우리는 그룹으로서 포괄적 원칙과 전략을 전개 중이며 이 결과 시대 변화와 시장 소비자 동태를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는 브랜드를 확실하게 전개한다. 이것이 우리 그룹의 총력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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