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
한국의 신
  • 장업신문
  • 승인 2002.04.0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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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고시대의 신은 화(靴)와 이(履)로 표기되는데, 상고시대부터 신어 왔음이 쌍영총(雙楹塚) 벽화나 삼국사기 등에 나타나 있다.



화는 지금의 장화와 같은 형태로 북방민족이 많이 착용한 신이고, 이는 운두가 낮은 신으로, 화를 제외한 모든 신발의 형태를 총칭한다. 재료에 따라 혜(鞋) 비·극·구·석·답(踏) 등이 있는데, 이러한 것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전해졌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종류와 명칭이 더욱 다양해졌다.



삼국시대에 이는 귀족계급에서 주로 신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화와 이가 병용됐다. 고려 초에는 이를 주로 사용하다가 고려 말에는 화를 많이 사용했고, 조선시대에는 혜를 대표적인 신으로 사용하고, 화는 상류계급에게만 허용했다.



계급과 의복에 따라 신는 신발의 종류가 달랐으니 목이 길고 가죽으로 만들어진 흑피혜는 조복(朝服) 제복(祭服)에, 바닥이 나무로, 목은 천으로 구성된 목화는 조복 ·공복(公服)에 착용했다.



여자들의 신은 지금의 고무신과 비슷한 혜의 형태로, 당혜 궁혜(宮鞋) 운혜(雲鞋) 모두 형태가 같고 안은 융 같은 폭신한 감을 쓰며 겉은 여러 색의 화려한 비단을 씌워 만들고 바닥에는 징을 군데군데 박았다. 궁혜는 궁중용이고 당혜는 양가집 부녀자들이 신었으며 운혜는 일반 여염집 부녀자들이 신었다.



삼[麻]으로 만든 미투리는 짚으로 만들어진 짚신과 함께 신은 지방에서는 반인(班人級) 부인용이었으나 대개 서민 이하의 부녀자들이 신었다.



혜 종류의 신과 짚신 등은 개화기까지 사용되었으나 갑오개혁 이후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구두가 등장했다. 1920년대부터 고무신이 나오게 되자, 당혜·운혜 등 혜와 짚신 ·미투리·나막신이 고무신으로 대용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또 이 때에는 고무신 외에도 경제화 즉 운동화가 사용되었다.



자료도움 : 코리아나박물관 김선주 학예연구원·문의는 02-580-8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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