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로더 여사 별세
에스티로더 여사 별세
  • 최혜정 hjchoi@jangup.com
  • 승인 2004.04.28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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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로더 창업자…세계 뷰티산업계 애도 물결
"단지 바라기만 하고 희망만 하여 여기까지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꿈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오늘날의 화장품 왕국 에스티로더를 이룬 에스티로더 그룹의 창업자이자 뷰티 산업의 리더로 살아온 에스티로더 여사가 향년 97세로 지난 24일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별세했다.



에스티로더 컴퍼니즈는 지난 25일 에스티로더 여사가 심폐기능 장애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그의 아들인 레너드 A 로더는 "어머니는 가족, 그녀가 세운 훌륭한 회사, 뷰티를 여성의 삶 곳곳에 가져다 놓겠다는 임무 등 세 가지에 관해서 매우 열정적이었다"고 기억했다.



또 현재 크리니크연구소사의 회장인 로날드 S 로더는 "어머니는 뛰어난 비즈니스 우먼이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아내이자, 어머니, 할머니였다. 모든 것에 즐거움과 굉장한 통찰력, 그리고 결단력을 갖고 있었으며 그녀의 정신은 모두 안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티로더 여사는 체코계 아버지와 헝가리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패밀리 코스메틱 비즈니스로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전설적인 인물로 집에서 만든 네가지 스킨케어 제품을 팔면서 화장품 사업을 처음 시작, 1930년 그녀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 조셉 H 로더(Joseph H. Lauder)와 결혼한 이후 46년 자신의 이름을 딴 `에스티로더`를 창업했다.



이후 에스티로더는 1948년 뉴욕 삭스 시티의 5번가에 매장을 연 이후 현재 1백30개 나라에 1만4천여 매장을 보유, 연간 매출액 47억 달러의 거대 브랜드가 됐다.



에스티로더를 비롯해 아라미스, 클리니크, 드 라 메르, 프리스크립티브, 오리진스, 맥, 바비브라운, 토미 힐피거, 도나 카렌, 아베다, 스틸라, 달팡, 마이클 코어스, 로댕&필드 등 브랜드를 인수, 명실상부한 화장품 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에스티로더가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이룬 성공 신화보다 더한 것은 뷰티산업을 변화시킨 뷰티 문화와 고객 서비스의 시작으로 실질적인 판매기법 등을 가르친 점이며 무료 샘플과 고급 매장 전략은 당시로서는 최고의 마케팅 기법으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



또 에스티로더의 사인인 블루의 선택이 그녀의 탁월한 능력으로 손꼽힌다. 미국과 세계에 뷰티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점이 바로 그것이며 그녀는 늘 "당신이 한 회사의 회장이든 어떤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든, 당신은 지혜와 강인함 뿐 아니라 아름다움과 여성스러움도 필요하다"고 말했던 평소의 지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같은 사업 수완을 인정받아 1967년에는 미국에서 비즈니스 사업에서 여성 기업의 두드러진 여성 10명 중 한 명으로 지정됐으며 1989년에는 Cosmetic Executive Women에서 그녀에게 Lifetime Achievement Award를 시상했고 1994년에 American society of Perfumers에서 Living Legend award를 줬다. 또 98년에는 시사주간지 타임이 발표한 가장 영향력있는 20세기 천재 경영자 20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에스티로더 여사는 슬하에 두 아들 레너드 A. 로더와 로날드 S 로더를 뒀으며 큰 며느리 에블린 H 로더, 둘째 며느리 조 캐롤 로더, 큰 손자 윌리엄, 게리, 큰 손녀 에어린과 제인, 그리고 여섯 명의 증손자들과 살았다.



현재 에스티로더그룹은 맏아들인 레너드 로더가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오는 7월 손자인 윌리엄 로더가 최고경영자에 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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