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장품이 써내려온 아름다운 신화
한국화장품이 써내려온 아름다운 신화
  • 장업신문 master@jangup.com
  • 승인 2002.03.2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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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제일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오직 화장품이라는 한 길만을 걸어오며 내실을 다져온 화장품 전문제조업체 한국화장품의 40년 역사는 국내 화장품 산업의 역사와도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40년간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화장품의 품질향상을 통한 국민의 미용생활 수준향상을 모토로 불량화장품과 불법외래품이 판을 치던 그 당시, 보사부(현 보건복지부)로부터 화장품 제조허가를 획득, 화장품제조업에 뛰어든 한국화장품은 주력제품으로 단학 포마드를 선정하고 기술제휴를 통한 우수한 품질을 바탕으로 기존에 시장에 출시돼 있는 제품군들에 비해 한 단계 위의 고급 브랜드 이미지로 소비자들에 어필하는 데 성공, 남성용 헤어시장을 석권하고 여성 화장품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67년 봄 ‘쥬단학’ 브랜드를 필두로 여성 화장품 개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우수한 품질과 대대적인 홍보전략, 특히 방문 판매를 통한 소비자 공략이 주효해 화장품 업계에서 위치를 다져나가기 시작한 기간이다. 70년대 초부터는 명실공히 업계 2위의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72년 친수성 화장품 ‘쥬단학 하이베스톤’을 개발했고 이어 73년에는 남성 화장품 ‘맨담‘을 선보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맨담은 당시 미국 영화배우인 찰슨 브론슨을 광고모델로 내세워 광고계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77년에는 경기도 부천에 화장품 단일공장으로는 동양 최대규모인 초현대식 공장을 준공했다. 79년에는 국내 최초로 약산성 화장품 개발에 성공, 큰 폭의 성장을 시현함은 물론 기술력에서도 절대우위에 있음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한국화장품은 80년부터 프랑스 로레알 사와 기술제휴를 맺고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83년에는 생명공학을 이용한 국내 최초의 바이오 화장품을 개발한 데 이어 85년에는 쥬단학 쎄씨봉, 88년에는 쥬단학 라이브좀, 89년에는 메이크업의 스킨케어화를 시도한 쥬단학 세렉션 등을 차례로 내놓아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시기 한국화장품은 기업의 핵심역량을 ‘미의 창조’라는 경영이념에 집중 투입함으로써 인화와 성실, 창의를 하나로 한 전략 경영을 펴나갔다. 이를 토대로 84년부터 86년까지 3년 연속 한국능률협회가 선정하는 ‘최우수 기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90년대 들면서 베아뜨·템테이션을 비롯해 노화 방지 전용 브랜드 컨티뉴와 기능성 화장품 파메스를 출시했으며 97년에 출시된 식물 성분의 피토 캐리어 화장품인 롱런 브랜드 칼리를 연속적으로 히트시키기도 했다.



이와 함께 한국화장품(주)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급변하는 고객의 요구에 부응코자 95년과 97년에 계열사로 (주)유니코스와 (주)시선래브를 연이어 설립했으며 특히 97년 5월엔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생산 거점기지로 프랑스 현지법인 라보떼 인터내셔날사를 설립했다.



2000년 칼리 리뉴얼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노화방지 기능성 브랜드 에이쓰리에프온, 20대 커리어우먼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급 브랜드 프레나, 그리고 올 1월 야심차게 내놓은 한방브랜드 산심(山心)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인 기존 브랜드의 리뉴얼과 새로운 브랜드 개발을 통해 다양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제품군들을 선보이고 있는 한국화장품의 미의 창조를 위한 역사는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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