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도 아름답다
동성애도 아름답다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 승인 2012.01.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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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세계에 널리 퍼진 동성애

 
갈매기 둥지를 살피다보면 가끔 유난히 알이 많이 담겨 있는 둥지들을 본다. 대개 한 둥지에 두세 개의 알들이 들어 있는 게 보통인데 어떤 둥지에는 대여섯 개의 알들이 비좁게 놓여 있다. 갈매기는 동물 세계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일부일처제를 고수하며 사는 새다. 한 수컷이 둘 이상의 암컷을 맞아들여 그들로부터 모은 알들은 결코 아니다.

갈매기는 암수를 구별하기 대단히 힘든 새다. 겉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 새끼를 돌보는 모습이나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행동이나 거의 완벽하게 똑같다. 그래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거대 둥지’를 지키고 있는 갈매기 쌍을 자세히 조사해보니 둘 다 암컷이었다. 이른바 레즈비언 부부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들은 레즈비언이 아니다. 다른 수컷들과 성관계를 가져 자식은 갖되 살림은 마음 맞는 암컷과 차린 이른바 양성애자들이다. 서양에는 이미 이런 양성애자 부부들이 버젓이 가족을 이루고 산다. 둘 다 제가끔 어떤 남성의 아이를 낳아 함께 기르기도 하고 아니면 둘 중 하나만 아이를 낳아 함께 살기도 한다. 이들에게도 법적으로 엄연한 가족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저 보편적인 생활방식과 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하고 수용한다.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사는 채찍꼬리도마뱀들은 거의 모두가 레즈비언들이다. 레즈비언 갈매기 부부가 낳은 알들은 대부분 수정이 되지 않은 알들이라 아무리 품어도 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10~20퍼센트의 알들은 양성애자들이 낳은 알들이라 제대로 부화하여 새끼들이 태어난다. 레즈비언 채찍꼬리도마뱀들은 아무 문제 없이 새끼를 낳는다. 그들은 모두 수컷이 필요 없는 단위생식을 하기 때문이다.

채찍꼬리도마뱀들의 성행위를 관찰해보면 암수가 있는 다른 도마뱀들의 성행위들이 모두 나타난다. 모두 암컷들로만 이루어진 사회지만 똑같이 다양한 성행위들이 행해진다. 다만 암수 성기의 교접이 없을 뿐이다. 암컷들 간의 성관계지만 둘 중 하나가 위에 올라타고 상대를 자극한다. 그러면 정자가 없이도 수태가 된다. 암컷이 수컷 없이 그냥 암컷을 낳는다.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에서 동성애 행위가 관찰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일명 보노보(bonobo)라 불리는 피그미침팬지의 사회는 전반적으로 성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다. 암컷들은 맛있는 먹이를 얻기 위해 그리 대수롭지 않게 성을 제공한다. 이 같은 행위는 암컷들이 수컷들뿐만 아니라 다른 암컷들에게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베푼다. 수컷들 간의 구음(口淫)도 늘 있는 일이다. 버금 수컷들은 종종 으뜸 수컷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그의 성기를 만져주며 아부한다.

집에서 암코양이들만 따로 키워본 사람들은 그들끼리 암수가 벌이는 성행위를 모두 하는 걸 보았을 것이다. 동물 세계에서의 동성애는 너무도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어 그 예들만 모아놓은 책이 작은 백과사전 분량은 된다. 동성애를 단순히 병리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오히려 인간 사회에서는 동성애가 왜 이렇게 드물까 의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드물어서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대부분 숨어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일까? 침팬지나 보노보에서 그렇게 흔한 행동이라면 그들과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나와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초원을 헤매던 시절의 인간들에게는 그리 낯선 행동이 아니었으리라. 실제로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동성애가 매우 자연스런 일이었지 않은가. 소크라테스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를 위대한 철학자로 숭앙하지 않는 이는 당시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한 연예인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난 다음 출연이 금지된 일이 있다. 동성애가 이미 TV 드라마의 주제로까지 다뤄진 즈음에 무슨 때늦은 법석인가 싶다. 마치 동성애가 무슨 전염성 질환인 것처럼. 동성애자와 옷깃이라도 스치면 금세 동성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동성애는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자연현상이다. 양성애자이며 레즈비언 부부관계를 유지한다면 모를까, 남자끼리 또는 여자끼리 살며 자식을 낳지 않으면 같은 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그들의 성향이 다음 세대로 유전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동물들에서 동성애가 나타난다. 동성애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유전자의 전파를 돕는 것은 아닐까. 자식이 신부나 수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받는 충격과 동성애자라고 밝혔을 때 받는 충격이 왜 달라야 할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론생태학계의 거물인 스탠퍼드대학의 교수가 얼마 전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평소에 특별히 여성스러운 데가 많았던 양반이 아니었기에 충격이 작지 않았다.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는 눈이 곱지 않음은 선진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다만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우리보다 훨씬 넓게 그들을 포용할 뿐이다.

학계에 있다 보니 외국 손님들을 자주 맞는다. 서울은 이제 지나칠 정도로 서구화하여 그들에게 그리 낯선 곳이 못 된다. 그러나 거리 풍경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그들이 조심스레 던지는 말이 있다. “너희 나라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인 모양이다.” 젊은 여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개방적인 성문화’에 그들은 적지 않게 놀란다. 그런 사회가 실제로는 용감하게 허울을 벗어던진 동성애자들을 ‘닫힌 가치관’의 제물로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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