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사회의 민주주의
벌 사회의 민주주의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 승인 2012.01.0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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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찰벌의 유세, 일벌의 선택

 
꿀벌은 춤으로 말한다. 꿀벌이 추는 춤에는 꿀이 있는 꽃까지의 거리와 방향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다. 꿀벌의 사회에는 매일 아침 일찌감치 꿀을 찾아나서는 이른바 정찰벌들이 있다. 좋은 꿀을 발견한 정찰벌들은 집에 돌아와 동료들에게 각자 자기가 따온 꿀을 맛보게 하곤 곧바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꿀을 따온 곳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우, 즉 집에서 반경 30~50미터 이내인 경우 정찰벌은 이른바 원형춤을 춘다. 시계 방향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번갈아 조그만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정찰벌이 추는 춤을 따라 몇 바퀴 따라 돌던 다른 일벌들은 벌집을 떠나 사방팔방으로 날며 꿀 있는 곳을 찾는다. 이런 관찰 결과로 미루어보아 원형춤은 단순히 집 근처에 좋은 먹이가 있음을 알리는 자극신호에 불과한 듯싶다. 구태여 정확한 거리와 방향을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아카시아 냄새가 나는 꿀물을 나눠주며 원형춤을 추면 바로 뒷산의 아카시아 숲에 가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먹이가 집에서 50미터 이상 떨어져 있을 경우, 정찰벌이 추는 춤은 단순한 원형춤에서 숫자 8을 옆으로 뉘어놓은 것과 같은 모습의 꼬리춤으로 변한다. 몸을 부르르 떨며 직선으로 짧은 거리를 움직인 다음 원을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몸을 떨며 직선춤을 추고,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 돌아온다. 이때 직선춤의 방향과 수직 방향과의 각도는 태양과 꿀이 있는 곳 사이의 각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정찰벌이 수직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30도 각도를 유지하며 직선춤을 춘다면 다른 일벌들은 벌집 밖으로 나가 태양의 방향과 30도를 유지하며 오른쪽으로 날아가 꿀을 찾는 것이다.

방향만 가르쳐주고 거리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리 유용한 정보가 아닐 것이다. 정찰벌들은 춤을 추는 속도로 거리를 나타낸다. 천천히 추는 춤은 그만큼 한참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벌들의 춤언어가 얼마나 정확하고 객관적인지 인간인 우리도 그들의 춤을 읽고 정찰벌이 꿀을 발견한 장소를 찾아갈 수 있다.

꿀벌의 춤언어를 처음 해독한 공로로 1974년 노벨 생리 및 의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폰 프리쉬 박사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실제로 정찰벌의 춤을 보고 꿀이 있는 곳을 찾아내는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시험일이 되기 며칠 전부터 폰 프리쉬 박사는 근처 숲 속 은밀한 장소에 설탕물을 준비하여 벌들을 그리로 오도록 훈련시켰다. 그러고나서 시험일에 학생들에게 벌통에 가서 춤언어의 의미를 해독하여 설탕물 옆에 앉아 있는 박사를 찾아오게 하는 것이다. 폰 프리쉬 박사를 시간 내에 제대로 찾아온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받았을 테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아마도 낙제를 했으리라.

이제 우리는 꿀벌의 춤언어를 알아듣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꿀벌에게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걸 줄도 안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연구진은 몇년 전 작은 꿀벌 로봇을 만들어 벌통 안에 넣고 컴퓨터로 조정하여 춤을 추게 하였다. 정찰벌들이 추는 그런 춤을 말이다. 그리곤 춤으로 알려준 장소에 가서 기다렸더니 벌들이 그리로 날아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꿀벌에게 말을 건 것이다. 꿀벌들이 우리가 그들과 말을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대꾸하기 시작하면 드디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도 모른다.

성숙한 군락의 경우에는 아침마다 줄잡아 20여 마리의 정찰벌들이 꿀을 찾아나선다. 그들이 하나둘씩 돌아와 제가끔 춤을 추기 시작하면 벌집은 우리네 선거유세장을 방불케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각 후보가 서로 다른 곳에서 집회를 갖거나 공동으로 하더라도 한 사람씩 차례로 정견 발표를 하는 데 비해, 벌들은 모두 한꺼번에 자기가 발견한 꿀이 가장 훌륭하다고 유세를 하는 것이다. 큰 광장에서 여기저기 후보들이 확성기로 떠들어대고 유권자들은 이 얘기 저 얘기 들어보며 옮겨다니는 셈이다.

어찌 보면 매우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과정이지만 벌들은 점차 가장 훌륭한 꿀을 발견한 정찰벌 주변에 모이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전 군락의 일벌들이 그 정찰벌이 발견한 꿀이 있는 곳으로 함께 일을 나간다. 여왕벌이 군림하는 사회지만 이 모든 과정에 여왕의 입김은 전혀 미치지 않고 오로지 민중의 뜻만이 있을 따름이다. 완벽한 의미의 다수에 의한 정치, 즉 민주정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민주정치를 하기 위해 우리를 대표할 국회의원들을 뽑는다. 가장 신빙성 있는 정보로 가장 많은 동료들을 주변에 불러모은 정찰벌이 모두를 꿀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듯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국회로 가게 된다. 지연이나 학연 또는 소속 정당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진정 누가 우리를 꿀이 흐르는 곳으로 훌륭하게 인도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여 뽑아야 옳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정찰벌들은 거짓 공약을 남발할 수 없다. 그랬다가는 금방 들통이 나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인이 자신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인지는 그가 당선된 후에야 확인할 수 있는 까닭에 시민단체들이 작성하는 후보들의 성적표는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다만 시민단체들 모두 그들이 진정 시민을 위한 모임임을 명심하여 결코 군림하지 아니하고 늘 봉사하는 자세를 잃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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