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상의 여인인가
왜 연상의 여인인가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 승인 2011.12.1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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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나라에도 데릴사위 제도를 비롯해 나이 어린 신랑이 과년한 신부를 맞는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나 한결같이 남편이 부인보다 나이가 많다. 미국 텍사스대학의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와 그의 동료들이 전 세계 37개 문화권의 젊은 남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자들은 평균 2.5세 정도 어린 여자와 결혼하기를 희망하고 여자들은 3.5세 정도 위인 남자를 원한다.

실제로 초혼의 경우에는 남편과 부인의 나이 차이가 약 세 살 정도지만 남자들이 재혼할 때는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자들을 맞아들이기 때문에 전체를 평균하면 부부간의 나이 차이는 두 살에서 여섯 살에 이른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상대적으로 자기보다 더 젊은 여자를 원한다. 늙어갈수록 젊은 남자들보다 더 어린 여자를 얻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이 차가 훨씬 많이 나는 여자를 찾게 된다는 뜻이다. 남자가 삼십대에 이르면 자기보다 약 다섯 살쯤 아래인 여자를 원하지만 오십대에 접어들면 열 살 내지 스무 살이나 어린 여자를 원한다.

이렇듯 남자들이 젊은 여자를 원하고, 또 실제로 나이 어린 여자와 결혼하는 현상은 다윈의 이른바 성선택설에 의해 비교적 정연하게 설명된다. 다윈의 성선택설의 일부인 성내(性內) 선택에 따르면, 번식 과정에서 투자를 훨씬 더 많이 하는 성이 투자를 적게 하는 성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선택을 받아야 하는 성의 구성원들은 자연히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다윈은 이 같은 경쟁이 암컷들 사이에서보다는 수컷들 사이에서 훨씬 더 치열하게 벌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경쟁은 또 당연히 번식력이 높은 연령의 암컷을 놓고 더 치열하게 벌어진다. 삼십대의 남성이나 오십대의 남성이나 한결같이 젊은 여인을 원하는 데는 이처럼 어느 정도 생물학적인 근거가 있다.

동물행동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동물 사회의 경우 거의 대부분 암컷이 선택권을 갖지만, 인간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돈과 권력을 확보한 남성들이 상당한 선택권을 누린다. 호주 북부지방에 거주하는 티위족의 청년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초혼 때는 심지어 열 살 또는 스무 살이나 많은 여자에게 첫 장가를 들었다가 훗날 권력을 쥐고 난 후에는 스무 살 내지는 서른 살이나 어린 여자를 아내로 선택한다.

여성들이라고 젊고 건강한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재력과 권력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전 세계의 모든 새들 가운데 조류학자들이 가장 많이 연구한 새로 영국의 박새와 함께 북미에 서식하는 붉은점찌르레기(red-winged blackbird)를 들 수 있다. 암컷은 그저 평범한 흑갈색을 띠는 반면 수컷은 몸 전체가 윤기 흐르는 까만 깃털로 뒤덮여 있고 날개 한복판에는 붉은 반점이 있다. 이들은 주로 늪지대에 사는데, 이른 봄 수컷들이 먼저 날아와 제가끔 자기 터를 차지한 후 영어로 ‘차 마셔라(Drink tea)!’ 하는 것 같은 노래를 부르며 암컷들을 자기 영역으로 유혹한다.

이때 암컷들은 수컷 자체의 매력보다는 그가 가진 재산 정도를 기준으로 수컷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새끼들을 기를 수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워싱턴대학의 연구진이 매우 짓궂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가장 기름진 터를 보유하고 있는 으뜸수컷을 잡아 거세한 후 무슨 일이 벌어지나 관찰했는데, 여전히 많은 암컷들이 그의 터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이웃집 수컷과 바람을 피우더라도 새끼들은 좋은 집에서 풍요롭게 기른다는 얘기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남자들이 연상의 여자와 사귀는 모습이 흔하다. 아니, 여자들이 나이 어린 남자를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대학 캠퍼스에서는 후배 남학생과 데이트를 하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유행처럼 되었고 연하의 남편을 맞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남자가 연상의 여인을 원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엔 그리 쉽지 않은 현상이다. 여자가 나이 어린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정확한 통계자료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연상의 여인을 흠모하는 남자들의 나이가 대부분 어린 걸 보면 결국 수태 적령기의 여인을 찾는 듯싶다. 아마존에 사는 야노마모 인디언의 표현을 빌면 ‘남자란 잘 익은 과일 같은 여인을 원하기 마련’이다. 사춘기 소년들이 자기 또래나 몇 살 아래인 여자 아이들에게는 이렇다 할 성적 매력을 못 느끼고 생리적으로 완숙한 여인에게 끌리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문화적인 요소들이 상당한 힘을 발휘하는 인간 세계와 달리 동물 세계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암컷들에게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수컷들이 배우자를 고르는 현상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그 성과가 적다. 수컷이 매 짝짓기마다 엄청난 투자를 하는 몰몬귀뚜라미의 경우에는 드물게도 수컷이 암컷들 중에서 배우자를 고른다. 재미있게도 그들은 가장 성숙한 암컷, 즉 몸 속에 많은 알을 지닌 가장 넉넉한 암컷을 선택한다.

여성들이 연하의 남자를 선택하는 것은 여성들의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다. 데릴사위의 경우 부인의 가문이 거의 예외 없이 눈에 띄게 월등했다. 사위가 될 사람의 재력이 아니라 인물됨됨이와 재능이 선택의 기준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여대생들은 대부분 졸업 후 사회 진출을 희망하고 있으며, 자기만의 능력을 쌓는 일에 남학생들보다 더 열심이다. 앞으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경제력이 신장되면 반드시 돈과 권력을 갖춘 나이 많은 남자를 선호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다. 대신 좀 더 자유롭게 애정 표현도 잘 하고 훨씬 나긋나긋한 연하의 남자를 선호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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