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대표이사 회장
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대표이사 회장
  • 임승혁 sealim58@jangup.com
  • 승인 2012.10.1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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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스승과 양복업자가 "내 인생의 멘토"

 
동아제약 공채1기로 입사해 라미화장품 CEO를 거쳐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 우리나라 화장품업계에서 손을 꼽을정도로 기업을 일군 유상옥회장. 지금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코리아나 미술관과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을 보유한 ‘스페이스 씨’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코리아나 화장품 회사지분(주식보유)이 있기 때문에 이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직함은 여전히 갖고 있기도 하다.

유회장의 인생은 국내굴지의 화장품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기업가로도 많이 알려져있지만 워낙 미술품을 좋아하고 전문가 못지않는 감정수준으로 단순한 미술품 컬렉터은 아니다. 고미술품을 40년간 6500점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04~2005년 제9대 박물관회 회장을 지내고 2009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미술품200점을 기증하는등 그의 삶속에 미술품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에앞서 2003년 11월에는 강남구신사동에 스페이스 씨를 개관,현대미술관과 化粧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기업이익의 사회환원과 문화나눔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유회장의 경우 취미활동이 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것이다.그는 문화사업에 대한 공로로,98년 국민훈장,2009년 문화훈장을 받았다.

 여기에 유회장의 색다른이력은 다른기업가들에 비해 책을 많이 내는등 저술가로서도 유명하다. 나는 60에도 화장한다(93년),33에 나서 55에서다(97년),화장하는 CEO(2002년),문화를 경영한다(2005년),나의 소중한것들(2009년),순재선생실기(2010년)등이 대표적인 그의 작품이다. 그가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결산하는  ‘성취의 기쁨을 누려라’란 경영 에세이를 출간했다. 13일에는 롯데호텔에서 가까운 지인들만으로 조촐한 출판회를 가졌다.

유회장은 “이책이 기업인으로 후배나 후손들에게 좋은 귀감으로 보여지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자는  장업신문 창간18주년에 맞춰 인터뷰를 요청하고 5일 오후2시경에  강남 스페이스 씨를 찾았다. 출판기념회를 갖는 소회와 전문언론으로서 18돐을 맞은 본지에 대한 충고를 듣기위해서다.

처음보는 기자를 한식구처럼 따뜻하게 맞아 주는 그의 모습에서 성공적인 삶의 여유로움을 느낄수 있었다.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면서 기자보는 앞에서 넥타이를 매는 소박함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많은 책들을 출간하셨는데, 이번에 내는 책이 마지막인가요.
경영에세이지만 제인생의 결산이 담겨 있는 책이기 때문에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봐도 되겠죠. 그렇지만 마지막이란 표현은 어감이 안좋아서 last 1이라고 해둘까요.


-.이번에 출간한 성취에세이는 후배들에게 어떤 메시지인가요.
제가 항상 애기하지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거든요. 특히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것은 기적은없다고 생각하고 성공하려면 뜨거운 열정과 노력으로 한우물을 파는게 중요해요. 기업가정신으로 끈기있게 한우물을 파다보면 이루지못할게 없거든요. 저는 동아제약에 있을때도 그랬고 도산상태에 있던 라미화장품을 살릴때도 코리아나화장품을 창업해 정상에 올려놓을때도 내자신과 회사를 위해 할수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한번 맘먹었으면 어떻게든 노력해서 이루려는 그야말로, 성취의 기쁨을 누린것 같아요.


-.인생에 있어서 큰변화를 갖다준 멘토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대학졸업할때였는데 당시 고대총장이셨던 유진오박사님이 하루는 졸업예정자들과 점심식사를 했어요,총장님이 이제 제군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데 한가지 명심할게 있다면서 ‘한우물’애기를 하셨어요.이리갔다 저리갔다하면서 직업을 바꾸지말고 한우물을 파라는거였죠. 그말씀이 가슴에 비수처럼 꽃혔고,그래서 첫직장 동아제약서 30년,동아제약 계열사인 라미화장품서 10년,코리아나화장품 창업주로서 지금까지 60여년을 한길만 걸었습니다.

두 번째 제삶의 큰 전환을 가져다준 멘토는 양복업자였어요. 동아제약 근무하땐데,그당시에는 기성양복이 없었을때니까 양복업자가 회사로와서 맟춤양복영업을 했거든요. 그런데 하루는 그양복업자가 저하고 애기하는중 이런애기를 하는거예요. 유과장은 돈다루는 업무를 맡다보니 이성은 풍부한것 같은데 감성이 부족한것 같다면서 충고를 하는거예요. 생각해서 하는애기인데도 찔리더라구요. 이래선 안되겠다해서 그림을 감상하기위해 인사동을 찾게됐고 미술품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양복업자의 충고로 오늘날 미술관장에 미술품 컬렉터가 됐습니다.만약 제가 당시 양복업자의 애기를 흘려버렸다면 오늘의 제가 존재하지 않았겠죠.

-.삶중 제일 어렵고 기억에 남았을때는 언제였나요.
40대중반에 동아제약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잘나가고 있을때였는데 하루는 회사에서 도산일보직전에 있는 라미화장품을 맡아 운영하라는거예요.
날벼락이죠.퇴사를 하는냐 고민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당시 라미는 23억적자에다 변변한 제품도 없고 거래처는 엉망이고 벌여살려할 직원은 400명으로 문을 닫을 상황이었습니다.마지막으로 남산에 올라가서 고민고민하다가 라미운영쪽으로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회사살리는 일이 막막하더군요.생각해낸것이 직원들 사기진작이었습니다.직원들 모아놓고 노래부르기를 했어요.처음에 어색하던 직원들이 부를노래가 궁색해 애국가 4절을 계속 불러 재끼다보니 속이후련해서 그런지 얼굴표정이 달라지면서 회사가 활기를 띠게됐어요.10년만에 흑자로 돌아서며 600억매출까지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죠.

-.한국의 화장품 산업에 대해 전망해주시고 전문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주시죠.
지금은 과거에 비해 한국의 화장품 수준이 높아졌다. 옛날 수입에 의존하던 시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이제는 세게적인 화장품선진국이라할수 있는 미국프랑스독일,일본과도 견주어 손색이 없다. 문제는 강해진 한국의 코스매틱 파워를 어떻게 보급하느냐다.세계시장을 겨냥해 완제품과 기술을 수출하는 전략과 계획을 잘수립해 추진한다면, 수년내에 글로벌 코스메틱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일것이다. 이런점에서 마침 장업신문도 18주년을 맞았다하니 전문언론의 역할도 중요할것이다. 업계동반자로서  든든한후원자 역할과 함께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제몫 을 충실히 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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