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세계의 출세 지름길
동물 세계의 출세 지름길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 승인 2012.05.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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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집과 연줄이 좌우한다

 
 동물 세계에서 출세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 사회의 경우 출세한다는 것은 곧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그만큼 돈과 권력이 따라오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돈과 권력에 상관없이 명예를 얻고 후세에 길이 이름을 남기는 것도 분명 훌륭한 출세련만. 그래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지 않았던가?


언젠가 도올 선생이 방송에서 한 얘기가 생각난다. 녹화를 위해 택시를 타고 방송국으로 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택시가 마침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고 있을 때 운전기사 아저씨가 점잖게 던진 한마디. “이젠 금배지를 다셔야죠.” 우리 사회의 종착역은 왜 언제나 정치적 지위여야 하는가. 학식이 높은 지성인더러 왜 꼭 정치를 하라는 것인가. 지성은 지성대로 고고하게 두어야 한다. 또다시 소보(巢父)와 허유(許由)로 하여금 냇물에 귀를 씻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동물 세계의 출세는 오로지 번식 성공도로 가늠한다. 아무리 멋진 몸매를 가지고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하더라도 새끼를 낳지 못하면 결코 성공했다 할 수 없다. 자연계의 수컷들이 암컷들보다 한결같이 더 곱고 살가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동물 세계에서 수컷들이 허구한 날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도 모두 암컷을 취하기 위함이다. 많은 종의 동물에서는 수컷들 간의 경쟁에서 승자가 되어야만 암컷과 교미할 기회를 얻는다. 북방코끼리바다표범 수컷들의 싸움은 실로 처절하다. 날카로운 이빨에 무참하게 찢긴 얼굴에서 목으로 줄곧 굵은 핏줄기가 흐르건만 그들은 한참을 싸우고도 멈출 줄 모른다. 승자에게는 많으면 100마리도 넘는 암컷들을 거느릴 수 있는 부귀가 돌아오지만 패자는 변방에 내몰려 삶을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컷들 간의 싸움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우선 몸의 크기를 들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몸집이 큰 수컷이 작은 수컷을 능가한다. 어떤 동물들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사회적 지위도 높다. 물론 아주 늙으면 권좌에서 밀려나지만 그때까지는 나이가 들수록 점차 지위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대개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자연히 몸집도 커지기 때문에 꼭 나이가 많아 지위가 높아졌다기보다는 그만큼 힘이 세졌기 때문에 싸움에서 이길 확률이 커졌을지도 모른다.


인간과 유전자의 거의 99퍼센트를 공유하는 침팬지 사회에서는 힘과 나이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른바 ‘끈’도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래서 침팬지의 행동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미국 에모리대학의 프란스 드발 교수는 “침팬지 사회에서는 무엇을 아느냐보다 누구를 아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까지 말한다. 침팬지 사회에 수컷으로 태어나 제아무리 잘났다 해도 혼자서 오랫동안 권좌를 지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침팬지 수컷들은 서로 동맹을 맺어 함께 거사를 도모한다.


제인 구달 박사가 관찰한 아프리카의 야생 침팬지 사회에서도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출세운이 달라진다.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와 골리앗이라는 이름의 두 수컷은 워낙 당당한 수컷들이기도 했지만 둘 사이의 끈끈한 우정을 바탕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권력을 누린다. 그런가 하면 별로 힘도 없고 특별한 야망도 없어 보이는 수컷들끼리 친구가 되어 권력의 세계와는 거리를 두며 조용히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서울에 있는 모 대학 학생상담소가 신입생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신입생의 거의 절반이 출세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권력과 배경을 꼽았다고 한다. 본인의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대답한 학생들은 전체의 4분의 1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미래의 꿈을 실현해줄 지식을 얻기 위해 상아탑에 들어서는 우리네 젊은이들의 의식구조가 침팬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최근에 학연과 지연이 우리나라를 말아먹고 있다. 공직사회 개혁이라는 기치는 높이 들었지만 비리 소식은 끊이질 않는다. 아무리 공정하려 애써도 이런저런 끈을 타고 밀려드는 인사 청탁, 대출 청탁, 수사 청탁에 골머리를 앓는 데는 그럴 만한 생물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인간의 그런 속성을 자각하고 극복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불릴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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