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군단의 만리장성 쌓기
개미군단의 만리장성 쌓기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 승인 2011.12.2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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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잠언 6장 7절과 8절에서는 개미를 가리켜 “두령(頭領)도 없고 간역자(幹役者)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고 하였다. 현대생물학적 지식에 비춰보면 일부는 맞고 일부는 그리 정확하지 않은 말씀이다. 비교적 원시적인 몇몇 종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개미 사회는 여왕이 통치하는 이른바 전제국가들이다. 엄연히 두령이 있는 사회인 것이다.

언뜻 보면 일정한 규율 없이 마구 돌아다니는 듯한 일개미들은 사실 여왕이 분비하는 ‘여왕물질’이라 부르는 화학성분의 영향을 받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알을 생산하는 번식 업무는 전적으로 여왕이 맡고 일개미들은 평생 헌신적으로 일만 한다. 여왕물질은 일개미들의 뇌에 작용하여 여자로 태어났으되 여자 구실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유일하게 알을 낳을 수 있는 여왕에게 충성을 다하게 된다.

여왕물질의 화학구조 속에 여왕의 자세한 지시사항들이 일일이 적혀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여왕이 직접 작업 현장에 나와 진두지휘하지는 않는다. 성경 말씀대로 간역자는 보이지 않는다. 일개미들이 큰 먹이를 집으로 운반하는 과정을 관찰해보면 처음에는 조금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곧 한 방향으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힘찬 구령을 붙이며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라고 지시하는 작업반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훌륭하게 업무를 수행한다.

다른 개미 군락과 전쟁을 할 때도 돌격이나 후퇴를 알리는 소대장도 없건만 엄청난 단결력을 보인다. 미국 남서부의 사막에는 꿀단지개미라 불리는 개미들이 산다. 진딧물 같은 곤충들을 보호해주고 대가로 받은 단물을 저장할 마땅한 단지가 없는 이들이 개발해낸 아이디어는 바로 살아 있는 개미를 단지로 이용하는 것이다. 몇몇 선발된 일개미들이 굴 천장에 매달리면 그들의 뱃속에 꿀을 담아 놓기 때문에 꿀단지개미라 부른다.

꿀단지개미들은 종종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개 들판에 모여 힘겨루기를 하는 정도인데, 서로 누구의 병력이 더 막강한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서로 적의 병사들과 마주 보며 마치 자기 몸이 더 큰 것처럼 키재기를 한다. 자기보다 아주 작은 놈을 만나면 물어 죽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상대 군대의 머릿수를 세는 일이다. 개미가 사람들처럼 숫자를 셀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둘씩 짝을 짓고 났는데도 자신의 군대가 남으면 그만큼 이웃 나라보다 병력이 더 막강하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전쟁터에는 분명 지휘관은 없는 것 같은데 연락병은 있다. 그들은 마주 보고 힘을 겨루고 있는 개미들을 확인하고 다니다 자기 쪽 병사와 마주 보고 있지 않은 상대편 병사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 얼른 후방으로 달려가 전방에 더 많은 병사들을 투입하라고 알린다.

개미들은 과연 어떻게 지도자도 없이 이처럼 질서정연한 집단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미국 뉴멕시코 산타페에 있는 복합체계연구소의 과학자들에 따르면 개미들의 복잡한 집단행동은 각 개체들의 임의적 행동들의 결과다. 작은 힘이지만 각자의 올바른 판단이 한데 모여 그야말로 만리장성을 쌓는 것이다.

열대지방에 가면 흰개미들이 쌓아올린 마천루들이 종종 우리 키를 넘는다. 그 엄청난 건물을 청사진 하나 없이 십장도 없이 어떻게 만들어내는 것일까. 지금까지 여러 생물학자들이 관찰해본 바에 따르면 그저 일개미 각자의 임기응변적인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일개미 한 마리가 흙덩이 하나를 가져다 놓으면 다음 일개미가 또 흙덩이 하나를 그 위에 쌓고 또 다른 일개미가 그 위나 옆에 쌓는 식으로 짓다 보면 건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종의 흰개미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의 건물을 짓지만 실제로 각 군락이 지은 건물의 모습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정확한 설계 없이 그때그때 쌓고 잇고 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나 홀로 투자자’들을 우리는 흔히 개미군단이라 부른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열심히 땀흘려 일한다는 보편적인 개미상을 그린 것은 결코 아닌 듯싶다. 수적으로는 우세할지 모르나 힘도 없는 미물들이 방향을 못 잡고 이리 몰리고 저리 쏠리다 손해만 본다 하여 붙여진 별로 곱지 않은 이름이다.

한 10여 년 전에 미국 ABC 방송의 인기 시사 프로그램인 ‘20/20’은 매우 흥미로운 내기를 했다. 미국 금융계의 중심가인 월스트리트의 대표적인 증권사와 ‘20/20’의 기자가 주식시장에서 일정 기간 동안 누가 더 많은 돈을 버는지 내기를 한 것이다. 증권사는 두말할 나위 없이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정보를 다 활용하여 계획적인 투자를 한 반면, 기자는 상장주식들을 과녁처럼 방송국 벽에 걸어놓고 눈을 가린 채 화살을 던져 꽂히는 대로 투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기는 기자의 마구잡이식 투자의 승리로 끝이 났다.

아무리 많은 정보가 있어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였다. 그러나 만일 그 기자가 본연의 행정 및 정치 업적에 비해 주식시장에서 훨씬 더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우리 정부 관리들이나 정치인들과 내기를 했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내 생각에는 아마 내기 자체를 거부했을 것 같다. 정답을 미리 알고 있거나 그것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과 내기를 하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불공평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투자자 개개인의 상식적인 판단들이 모여서 공정하게 시장의 방향이 정해질 수 있어야 주식시장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증권회사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면 불공정 거래라 하여 처벌을 받지만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많은 부를 얻은 권력가들은 왜 처벌받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주식시장에서 개미군단이 사라지면 시장 그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정당한 경기가 되도록 게임의 법칙을 올바로 세우고 감독해야 할 것이다. 개미들은 전체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는지 언제나 알고 일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안다. 게임의 법칙이 제대로 서면 증권시장의 개미들도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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