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남의 자식 입양한다
동물도 남의 자식 입양한다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 승인 2011.12.14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연재는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의 저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전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라는 부제 그대로 동물들의 행태나 사실과 함께 우리 인간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앞으로 연재될 글들을 통해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믿는 저자가 보여 주는 생명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최재천 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전임강사, 미시건대 조교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본지 11월17일자 인터뷰 기사 ‘장업초대석’ 참조)
연재를 허락해 주신 최재천 교수와 효형출판사에 감사한다. <편집자 주>

1985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의 박사과정 연구원이 되어 파나마에 도착한 이튿날, 지도교수인 에버하드 박사가 야외연구소로 날 보러 왔다. 열 살쯤 돼보이는 소년을 데리고 왔는데, 아빠와 닮은 곳이라곤 찾아보기 힘들건만 내게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에버하드 박사가 에콰도르에 살던 시절 그곳 고아원에서 입양해 기르는 아들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뱃전에서 그 부자가 나누는 대화를 자연스레 귀동냥하게 됐다. 아들이 아빠에게 물었다. 왜 고아원에 있던 많은 아이들 중에 자기를 골랐느냐고. “나와 네 엄마가 그 방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우리를 쳐다보았고 계속 우리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아이가 바로 너였다”고 아빠가 대답했다. 그는 아들에게 입양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어떻게 입양하게 되었는지도 허물없이 이야기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또 그 아이를 자기 몸에서 나온 자식 못지않게 사랑한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별명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물론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에게 따뜻하게 먹이고 재워줄 가정을 찾아준다는 취지였겠지만 어느새 개인과 사회가 작은 생명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국제적인 수치라며 해외 입양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이렇다 할 대안이 없는 가운데 애꿎은 아이들만 점점 더 불쌍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국내 입양을 권장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데 매우 인색하다.

스스로 단일민족이라 부르짖으며 순수 혈통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이 한 몫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생물학자인 나로서는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반도는 생물들이 대륙에서 섬으로 이동하는 길목이다. 작은 반도국가인 우리나라는 역사의 상당 부분을 중국의 속국으로 지냈으며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렸다. 몽고의 말발굽에 짓밟혔고 또한 러시아에 휘둘렸다. 36년간 일본의 품에 강제로 안겨 있었던 역사는 또 어찌할 것인가. 그러고도 우리 몸 속에 순수한 배달의 피만 흐른다고 우길 수 있는가?

상대적으로 다분히 폐쇄적이었던 조선시대의 역사에 가려 덜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일찍이 신라와 고려시대에 이미 멀리 서역과 무역을 하기도 했다. 문학적으로 중요하다고 해서 한때 입시를 위해 열심히 외워야 했던 향가 ‘처용가’의 네 다리 중 둘이 어느 먼 나라 사람의 다리였을 것이라는 학설이 제법 설득력이 있다고 들었다.

일본의 경우,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쳐 넘어온 한족과 털이 많기로 유명한 섬 사람인 아이누 족이 뒤섞여 오늘에 이르렀다. 최소한 두 종족의 피가 섞여 있는 것이 확실한데도 섬이라는 환경 때문에 유전자의 다양성이 낮아 선천성 유전병의 발병률이 유달리 높은 나라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유전병이 훨씬 적은 까닭도 아마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반도에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일찍이 입양 풍습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자식이 없는 맏형이 아우의 집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아우가 아들을 양보할 때까지 단식투쟁하는 것은 어느 가문에나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혈통을 잇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객담이지만 말이 단식투쟁이지 정말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틴 것은 아니라고 한다. 허리춤이나 소맷자락에 미리 넣어온 곶감을 몰래 빼먹으며 농성을 했다고 전해온다. 물론 형님의 의도를 아우가 모를 리 없었고, 그래서 이 같은 자식 구걸은 몇 나절씩 걸리기도 했다 한다.

타조 사회에서는 서열이 높은 암컷이 다른 암컷들에게 자신의 둥지에 알을 낳게 한 다음 혼자 그 많은 알을 품고 보호한다. 너무 많이 모아 날개 아래 제대로 다 품지도 못한다. 또 새끼들이 태어난 후 그들을 데리고 다니다 다른 엄마를 만나면 서로 다퉈 승리한 암컷이 양쪽 새끼들을 모조리 데리고 간다. 왜 이렇게 동네 아이들을 모두 불러모아 혼자 기르려 하는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남의 자식들이 많은 가운데 자기 자식을 기르면 그만큼 포식동물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줄어든다는 가설이 있으나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다. 새끼들이 많으면 그만큼 포식동물에게 발각될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북미에 서식하는 어느 민물고기의 수컷은 암컷이 바위 밑에 붙여주고 간 알들을 다른 물고기들이 집어 먹지 못하도록 감시한다. 또한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스스로 항생물질을 분비해 알 표면에 바르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제일 무서운 적은 알을 빼앗아 대신 기르려고 싸움을 걸어오는 다른 수컷들이다. 도대체 왜 남의 자식을 억지로 빼앗아 기르려는 것인가? 동물행동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암컷들은 알을 보호하고 있는 수컷을 선호한다. 새내기 아빠보다는 경험 있는 아빠에게 자기 자식을 맡기려는 암컷들이 많기 때문에 남의 자식을 키워주는 의붓아빠들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식을 더 많이 키울 수 있다.

미국에 살 때 동유럽의 공산정권이 무너진 후 루마니아의 고아들을 품에 안고 돌아오는 미국인들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난다. 공산정권이 물러나긴 했어도 여전히 복잡하고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행정절차를 겪으면서까지 그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아이들은 놀랍게도 모두 어머니에게서 에이즈 바이러스를 물려받은 버림받은 영혼들이었다. 그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그들이 천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언젠가 TV에서 지체부자유아를 입양해 키우는 어느 부부의 모습을 봤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사람이 다 있구나 싶어 목이 메었다. 스스로 아이를 갖지 못해 남의 자식을 데려다 키우는 일도 어려운데 그 부부는 자신들의 아이도 있건만 남의 자식을, 게다가 몸도 온전치 못한 아이를 사랑으로 감싼 것이다. 물고기의 경우처럼 자신의 자식을 더 많이 갖게 되는 이른바 ‘유전적 이득’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지체부자유아를 입양한 그 부부가 후하게 보상받을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